<공덕귀 권사 영결식 설교>

 

부르심을 따른 삶

빌립보서 3:10-16

 

빌립보서 3장에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되어 그의 부르심만을 좇아 뒤에 것은 돌아보지 않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에게 완전히 붙잡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그의 부르심을 들으면서 날마다 자기를 극복하고 그 부름을 좇아 달려갔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자처하면서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이 참여하지 않은 이방 선교에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이방을 위한 사도로 붙잡으신 것이요, 바울은 그 부르심을 따라 정말 험난한 이방 선교에 나서서 한 번도 아닌 세 번에 걸친 길고 험난한 선교 여행을 하였고, 성공적인 선교가 이루어진 어떤 도시에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도지로 이동하면서 열정적으로 전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흔히 자신의 삶을 경주자에 늘 비유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24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b-2a

사도 바울은 정말 부르심을 따라 열심히 달려간 경주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후 5:14)고 하면서 그의 영적 경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에 따른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전혀 피동적으로 그 강권에 따라 달려간 것만은 아닙니다. 바울 자신도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온 몸을 앞으로 기울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그의 고백에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달린 믿음의 길은 대단히 험난하고 어려운 길이었으며 많은 장애물들이 그 앞에 있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자매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고후 11:24-27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런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12:10

그는 이런 장애 앞에서 그의 선교의 꿈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여 돌이킨 적이 없습니다. 어떤 것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일도, 장래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롬 8:38-39

결국 사도 바울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길고 험난한 선교의 길을 달려가 마침내 그의 선한 싸움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도 바울의 신앙과 삶을 보면서 우리의 사랑하는 권사님의 삶이 바울의 삶과 비슷하였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권사님은 바울처럼 세계를 누비며 선교 사역을 펼친 선교사도 아니었으며, 또 바울처럼 깊은 신학적 서신들을 저작한 신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에 이끌려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하였던 것처럼 권사님도 어려서부터 들은 위로부터의 부르심을 따라 열심히 기도하면서 그 부르심을 따르기 위한 꿈을 키우기도 하고, 60이 넘어서 80에 이르기까지는 지칠 줄 모르게 달리셨습니다.

1970년대 인권회복과 민주화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일치를 위한 사회운동에 활발히 참여하셨던 것입니다. 한참 일하다가도 환갑쯤 되면 쉬고 싶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해외 선교사로 나가려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뒤늦게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열심히 달리셨던 것입니다. 안동교회 여전도회장, 순교자 기념사업회 회장, 예장 여전도회 서울연합회장,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초대 인권위원장, 구속자 가족협의회 회장, 예장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부회장, 양심범 가족협의회 회장, 한국 교회여성연합회 회장, 방림방적 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장, 한국 기독교학생총연맹 이사장, YH대책위원회 위원,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여성분과 위원장, 교회일치 여성협의회 초대 회장,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 실행위원 등 고달프고 어려운 일들에 언제나 앞장 서 달리셨던 것입니다. 특히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을 할 때 그가 맡은 일들은 대체로 앞장서서 투쟁해야 하는 일들이며, 날아오는 적의 화살을 막아 주는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그 이름을 방패막이로 최대한 이용하여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을 전개하여 가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권사님은 그만큼 고달프셨고, 힘이 드셨습니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 모든 운동에 참여하셨던 것입니다. 30대 후반이었던 저도 이런 저런 일에 참여하여 보았지만,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운동이나 감옥에 갈 각오를 갖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운동들이어서 몸을 사리게 되고, 가능하면 빠지려 하고 운동에 참여하더라도 앞장은 서려 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60대인 권사님은 남들이 꺼려하는 그런 운동에 언제나 앞장을 서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용기가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른 믿음의 용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입니다.

권사님이라고 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럴수록 그는 더욱 열심히 기도하심으로 그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권사님은 거의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셨습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기도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훗날 보면 인권 운동했던 사람들의 불성실한 삶의 태도 때문에 실망을 할 경우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그 반대였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거르지 않으셨고, 교회 봉사도 아주 성실하게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 바쁜 중에도 금요일이면 구역지도자로 구역예배를 빠짐없이 인도하셨고, 주일이면 노인반을 맡아 성경공부를 열심히 지도하셨습니다. 그것도 한 두해 하다 만 것이 아니라 20여년을 한결같이 그 책임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권사님은 그가 야당 정치인의 부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연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젊었을 적에 가졌단 그의 신학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노년의 투쟁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이룩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신학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종이나 자유자, 남자나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그의 혁명적인 신학이 그를 이방의 세계로 몰아냈던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이 주로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때 바울만은 그 복음을 들고 이방 세계로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단순한 부르심이 아니라 그에게 계시를 주시고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열게 하심으로 확신을 가지고 이방 선교에 헌신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고인을 한국의 최초의 여신학자라고 흔히 부릅니다. 그분의 회고록을 정리하고 편찬한 한국 여신학자협의회가 고인의 신학적 세계를 분석한 글에 보면 다음과 같이 권사님의 신학을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그에게는 현대의 시대정신과 신학사상이 말하고 있는 정의와 평화가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 예수의 혁신적인 여성관에 대한 명백한 이해, 고통받는 자와 십자가에 대한 이해가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에서 인권이 유린된 피폭자들, 구속자들, 여성들의 문제를 외쳤으며,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앞당기자고 호소하였다."

그렇습니다. 권사님에게는 뚜렷한 신학이 있었습니다. 그가 우연히 정치가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신학 때문에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과 억울하게 눌림 받는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싸웠으며, 그 시대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며 돌진하였고, 이 땅을 뒤덮었던 불의와 맞서 정의로운 싸움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생애를 보면서 후배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 짓고 있습니다.

"그의 활동은 해위의 아내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한 여신학자의 신앙과 결단이 배인 독자적인 신학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권사님은 양반 대가의 규수나 대통령의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항상 들으면서 충실하게 그 부름을 좇아 산 참된 그리스도인, 행동하는 신학자로서 자기의 삶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도 바울을 많이 닮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던 고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부르심을 들으면서 충실하게 그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가신 하나님의 종이며,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셨습니다. 고인은, 사도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팔십 평생을 돌아보면서 감사의 찬양을 소리 높이 외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의 신앙고백적 찬양의 소리를 들어보십시다.

"참으로 하늘을 두루말이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기에

감사와 감격은 크고 생각은 미치지 못해 뜨거운 마음만 고동치니

오 주여! 이 뜨거운 마음의 고동을 들으시고

감히 감사의 제물로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 이 감사와 감격의 노래가

주께 한없는 영광이 되기를 감히 기원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불붙게 하소서.

참으로 당신은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셨나이다.

그 한없는 사랑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일평생 내 앞에 모시게 하셨나이다.

나로 하여금 주의 구원을 기뻐하며 당신 이름을 영원히 찬송케 하셨나이다.

진실로 후대하신 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자손만대까지 돌리게 하소서.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받으시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고인은 이제 의의 면류관 받아쓰시려고 주님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분은 부활의 날에 크고 아름다운 소리로 감사의 찬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위로와 평강이 유족들과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