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종 성도 영결식 설교>

 

불로 연단된 정금 같이

베드로전서   1: 3-7

 

읽어 드린 베드로전서 말씀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고, 더 나아가 하늘 나라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큰 위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인간의 삶이 이 땅에서 사는 기간에 한정되지 않고 하늘 나라의 영원한 생명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졌던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을 통하여 다시 이어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이란 곧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유업을 이어 받는다는 말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의 육체적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그 죽음이 우리 삶의 끝이었고, 절망이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철벽(鐵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철벽으로 막혔던 죽음의 문이 열리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하나의 통과의례에 불과합니다. 그 죽음을 통과하여 우리는 바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육체적 죽음이 우리의 삶의 끝이었다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게 되었기에 이를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를 산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이기종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죽음의 문을 통과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분이 비록 우리가 기대하였던 만큼 오래 사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그러나 그 분은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름답고 빛나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나가셨기에 우리를 향하여 눈물을 거두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 보면 그 분의 죽음은 슬픔이지만, 영원한 세계에서 보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남이기에 오히려 은총이라고 할 것입니다. 훌륭한 신앙을 가지신 어머니의 기도와 지극한 정성으로 함께 한 부인의 사랑을 받은 그의 일생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그보다 더 아름답고 빛나는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기에 그 분의 행복은 거기에서 완성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뜻하는 것으로 이 땅에서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간 삶과 대조가 됩니다. 지상에서의 삶은 많은 제약을 가졌습니다. 상처받기 쉽고 병들기 쉬우며 나이 들면서 점점 쇠약하여 지다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꿈을 실현하기에는 너무나 제약이 많고 불완전한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제약을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모든 제약을 벗어나 자유를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온갖 보조적인 도구들이 발명되었어도 인간은 여전히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런 모든 제약이 벗겨지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로스라는 신학자는 죽음 후의 우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 속에서 비로소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됩니다. …인간이 잠정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면, 순간적으로 자기 본래의 모습에 눈뜨게 됩니다. 그 사람은 온전히 빛과 광명으로 채워집니다. 결국 죽음 속에서 인간은 궁극적인 성숙에 이릅니다. 죽음의 순간 인간은 모든 것을 알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가운데 궁극적인 결단을 자유로이 내릴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과하면서 하느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 계획하셨던 대로 완전한 인간으로 완성이 됩니다. 우리를 제약하던 모든 불완전함이 제거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우며 빛으로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 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이기종 성도님이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깨어나는 순간 너무나도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하느님을 분명하게 뵙게 될 것이며 그의 거룩하심과 그의 놀라우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그 앞에 무릎 꿇어 경배와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그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더 깊이 몰아 넣는 엄청나고도 숨가쁜 삶이요, 행복의 폭풍우가 될 것입니다."

 

끝으로, 7절 말씀에 보면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음 후의 아름다운 영원한 삶에 이르기 위하여 약간의 연단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죄로 말미암아 우둔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별 기대를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목표로 삼고 준비하지 않고 이 땅의 삶에 매어 거기서 모든 것을 이루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며 잘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어리석음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우리를 연단의 불 속에 집어넣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제약 속에서 사는 미완성된 인간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이 연단을 통하여 우리가 스스로의 미숙함과 모자람을 깨닫고 하느님을 향하여 눈을 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과 고통을 통과하면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약함을 통해서 하느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시련과 고통은 우리가 잘만 받아드리면 은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정금을 얻기 위해 금광석을 뜨거운 불에 넣어 연단하듯이 고난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를 연단하시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인께서 뜻하지 아니한 병을 얻어 고생을 하셨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고난을 통해 그를 연단하셨고 확실하게 하느님을 믿고 붙들게 하셨습니다. 결국 고인은 정금과 같이 연단되어 이제 하느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그 분이 받으신 고난은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 고난은 죽음을 통과하면서 맞이하는 영광스러운 삶의 풍성함에 비하면 지극히 가벼운 것입니다. 여인들의 해산의 고통이 크지만 태어난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그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듯이, 고인께서 당하신 말년의 고통이 컸지만 그러나 이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 그 놀라운 기쁨을 갖게 되면서 그 모든 고통은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사랑하는 이가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그 분은 완전하고 아름다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한 단계 높은 완성된 삶으로 나아가신 것이기에 눈물을 거두고 믿음으로 환송하시기 바랍니다. 고인은 지금 하느님 나라에서 천사들의 환영과 축하를 받으며 빛으로 충만한 삶으로 부활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유족들과 남은 우리 모두가 이 믿음과 소망을 간직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위로하심이 유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