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위 선생 2주기 추모설교>

 

 聖山에 居할 자

 시편 15:1-5 -

 

 시편 15편은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찾아온 이스라엘의 순례자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적인 삶이 어떤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라고 묻는 순례자들에게 제사장들이 대답을 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비슷한 시편이 24편에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냐"고 묻는 말에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탈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의 윤리적 수준을 말해 주는 시편들입니다. 정직과 공의와 진실을 존중하는 사회, 거짓과 악의를 철저하게 배격하는 사람들, 한번 약속한 것은 그대로 준수할 줄 아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예배하려 거룩한 곳에 올라오는 자들은 그 속에 악의를 품고 거짓을 숨겨 둔 채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거기에 계시기에 악한 생각을 가지고 올라갔다가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시편을 읽을 때마다 우리의 현실 특히 정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정직하게 행하며 진실만을 말하고 한번 약속한 것은 아무리 해로울지라도 변치 않는 그런 정치를 볼 수 있을까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게 됩니다. 오늘 우리사회는 너무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온갖 거짓과 불의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마저도 너무도 쉽게 져버리는 현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버리신 것이 아닐까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늘의 정치인들을 볼수록 그와 대조된 삶을 사셨던 분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런 분 가운데 한 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해위 선생님이십니다. 그분이 가신 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청렴결백 하셨던 삶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며,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꿋꿋하였던 모습이 우리의 뇌리에 더욱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분이 가신지 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던 참된 신앙인이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분은 전통적인 개념으로서의 크리스찬의 삶을 사신 분은 아닙니다. 장로도 아니며 집사 직분도 없는 분입니다. 따라서 눈에 띠는 교회봉사도 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기의 정직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참된 신앙임을 증명하셨습니다.

 해위 선생님의 회고록에 보면, 그분의 청렴결백하고 정직한 삶은 조부로부터 받은 교훈의 영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시 그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조부께서는 우리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인간의 도리와 정치의 참뜻을 일러주시곤 했다. 정치는 청렴결백해야 하고 욕심이 없어야 하며 덕성을 근본으로 하여 편협한 마음과 감정에 치우침이 없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인간은 매사에 세번 이상 생각하여 결정을 내리는 신중함이 있어야 하고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또한 내가 잘못했을 때에는 부끄러움 없이 사과할 줄 알아야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 평생 이러한 조부님의 가르치심을 늘 마음에 새겨두고 세상을 살아왔다. 인간의 근본도리와 정치철학의 정도를 가르치신 조부님의 큰 뜻이 내 인생에 큰 빛이 되어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회고록 444쪽)

 조부로부터 받은 교훈과 선친 장로님의 신앙의 영향으로 그분은 주의 거룩한 산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시게 된 것입니다. 그분을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분이라고 말함에 있어 동의하지 못할 부분이 있겠습니까? 그분이 정직하기 어려운, 자기신념을 지켜가기 어려운 정치인이라는 직함을 가졌던 분이라는 점에서 그의 강직함은 참으로 더욱 값진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위 선생님은 겸손한 분이며, 또한 검소한 분이었습니다. 선친께서 우리 안동교회의 초대 장로님으로서 교회를 위하여 많은 봉사를 하신 점으로 보나, 해위 선생님의 사회적 신분이나 그 신앙 경력으로 보아 충분히 안동교회 장로가 되실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대표들이 한번은 찾아가 장로로 피택 되도록 힘쓸 테니 그대로 수락하시라고 당부까지 드렸으나 본인은 즉시 이를 사양하셨다고 합니다. 정치인으로서 교회에 올바로 봉사할 수 없는데 어떻게 장로직을 수행하겠느냐고 하시면서 이를 거절하셨던 것입니다. 정치인으로 혹시나 교회에 누를 끼치는 일이 있을까를 염려하시어 직분을 한사코 사양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겸손하심과 사려 깊은 신앙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76년말 이 교회에 부임한 이래 해위 선생님은 거의 빠지지 아니하시고 교회에 출석하셨습니다. 아직 40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목사가 설교하는 것을 맨 앞자리에서 늘 경청하셨습니다. 그분이 맨 앞자리에 인자하신 모습으로 앉아 계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격려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하시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교회에 여러 모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번도 교회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박정권 때 민주화를 위하여 일선에서 투쟁하시면서도 교회나 목사를 향하여 어떤 요구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자기로 인하여 교회가 어떤 피해를 입기를 원치 않으셨기에 교회를 민주화 운동에 억지로 가담케 하시려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제 지나놓고 보니 얼마나 그분이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셨는가를 회상하게 됩니다.

 그분의 검소한 삶은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떠올릴 때 항상 몇십 년은 입으셨을 양복과 외투와 모자를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언젠가 한번은 구두를 신으시도록 도와드리는데 보니까 그 구두 뒷굼치가 너덜너덜하게 되어 갖다 버려도 줏어가지 않을 그런 것이었습니다. 검소한 삶은 그분의 신념이셨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한두 번 국민들에게 보이기 위해 가끔 논에 들어가 모를 심는 것 같은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라 생활화된 절약이요 검소였던 것입니다. 사실상 요즈음 그럴듯한 구호와 캠페인은 많지만 자기가 먼저 솔선 수범하는 지도자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검소한 삶을 영국에서 공부하실 때 몸에 익히신 후 돌아가실 때까지 꾸준하게 그대로 행하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환경보호 캠페인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모두가 한때만 하는 척 하다가 다시 원상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의 정치나 우리의 삶이 신념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과성 정치요,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삶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의 불안정은 신념 없는 정치인들의 즉흥적인 판단과 결정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의 정치인들이 해위 선생님처럼 검소한 삶을 신념으로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서 그것이 10년 이상 지속된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는 정말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고인을 존경하는 까닭이 바로 그의 이런 신념 있는 삶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에 있는 대로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신념 있는 정치가, 신념 있는 지도자들을 오늘 우리 사회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고인이 가신지 2년이 된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인을 추모해야 하겠습니다. 점점 더 거대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부각되어 오는 그분의 중후한 삶의 모습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들을 되새겨 오늘의 정치를 개혁하고 이 사회를 변혁시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훌륭한 분이 우리 교회에서 배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정말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그분이 대통령이셨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신앙인이셨기 때문이요, 참으로 진실 되게 생활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훌륭한 어른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시요, 우리의 교우이며,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의 지도자이셨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이제 고인께서는 저 거룩한 산에 우뚝 올라서서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 앞에 나가 의의 면류관을 받으실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칭찬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위로가 유족들과 그분을 사랑하던 모든 분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ㅤ

 

                                        1992년 7월 18일 2주기 추도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