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위 선생 6주기 추모 설교>

 

약속의 땅을 향한 출발

창세기  11:31-32

 

오늘 해위 선생님 6주기를 맞이하면서 무슨 말씀을 할까 생각하다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데라는 그가 살고 있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떠나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도중에 하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라의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데라의 이야기는 두 절밖에 안되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데라의 삶은 일부러 사서 산 고난의 일생이었고, 그의 죽음은 일단 그의 삶에서 실패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가족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일 만하게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일생의 종말이 되었습니다. 그는 오래 정이 들었던 고향집을 떠나가는 도중에 죽은 것입니다. 고향도 잃고 재산도 잃고 그렇다고 해서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남긴 것이 없는 그의 삶을 우리는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시의 사람들은 데라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는 쉽게 안일하게 잘 살아 나갈 수 있었는데도 고난의 길, 나그네의 길을 일부러 떠나갔습니다. 그 늙은 나이에 그의 아들 며느리 그리고 가족들을 다 데리고 그 모험의 길로 끌고 나선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남부 바벨론의 유브라데스 강가에 있는 도시로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도시와 문화 그리고 안전과 안일이 보장되어 있는 이 유프라데스 강가의 평화의 집에서 살 것을 거절하고, 생소하고 험하고 알지도 못하는 가나안 땅을 향해서 떠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데라의 이러한 결단을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만류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실로 그는 그 시대의 바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데라에게는 한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자손들의 미래를 본 것입니다. "내 자손들이 살아야 할 땅은 바벨론이 아니고 가나안이다"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현재 채워져 있는 창고, 현재 누리고 있는 안전과 번영, 이 바벨론의 삶은 자손들에게 물려줄 참된 상속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현재로 보아서는 이 출발이 어리석은 것 같이 보이고, 또 고난의 길이 될는지 모르지만 먼 장래를 위해서는 놀라운 은총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데라가 죽은 지 7,8백년 후에 태어난 모세도 같은 판단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영광을 누리며, 안정되고 행복한 일생이 보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택한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집트 노예로 고난받는 민족이지만 그러나 미래에는 무엇인가 이룰 위대한 가능성을 지닌 하나님의 백성인 히브리인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자기의 바른 삶의 길이란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집트의 모든 재물보다 보이지는 않지만 미래에 주어질 영광을 위하여 능욕을 당하는 것이 자기의 갈 길이라고 모세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모세보다 약 3천년 후에 태어난 우리가 존경하는 해위 선생님도 데라의 결단, 모세의 길을 택하신 분입니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부족함이 없는 그였지만,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조국의 슬픔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그분은 "구국의 가시밭길"을 자취하셨던 것입니다. 일본에 유학하여 다니던 慶應義塾을 중도에 고만두신 것도 조국의 독립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이 당시 중국의 辛亥革命에 쏠려 있어 그런 상태로는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귀국하였던 것입니다. 신해혁명에 자극을 받은 그분은 우리 나라도 혁명에 의해 일본을 구축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결국 상해로 건너가시게 되었습니다. 23세란 젊은 나이에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1921년 영국 에딘버라에 유학하여 공부를 하셨고, 귀국하였다가 모세처럼 오랜 은둔생활 끝에 해방을 맞이하여 비로소 해방 조국의 건설을 위해 발벗고 나서게 되시었습니다.

처음엔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조국 건설을 위해 일하셨지만, 결국 이 대통령의 독단과 6 25 전쟁중 있었던 국민방위군 사건과 1952년 5월에 있었던 부산 정치파동 이후 이 박사와 결별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권력을 탐하는 분이었다면 이 박사의 편을 들어 그의 눈에 나지 않도록 행동을 하였을 것이지만, 그가 원하였던 것은 조국의 민주화였기에 결코 독단적 행동에 동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해위 선생님은 그후 야당 정치인으로 험난한 길을 계속 투쟁하며 걸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4 19 학생 혁명후 내각책임제 하에서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시어 1년 8개월 동안 "외적인 격동과 내적인 고통"을 겪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결국 5 16 군사 혁명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신 후 계속되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수많은 고통을 겪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오직 조국의 민주화만을 염원하시면서 자신을 그 민족의 제단에 기꺼이 바치신 것입니다.

현재는 비록 초라하고 발전이 좀 더디고 괴로움과 불편이 있더라도 정직과 진실, 정의와 자유와 사랑이 있는 약 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오늘의 삶의 목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삶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은 내일의 바른 삶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조국의 미래를 내다보시면서, 현재의 안일을 버리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끝까지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데라는 아직 가나안의 목적지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먼길에서, 아닌 이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자 마자 그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데라의 죽음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이루어 놓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그는 다만 시작만 했을 뿐입니다. 그는 그의 가족을 바벨론으로부터 끄집어내셔서 가나안을 향해 목적을 세우고 과감하게 그곳을 떠나서 갈 길을 지시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벨론은 모든 세대의 파멸의 상징이요, 하나님을 거부하는 악의 상징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자손들을 어떻게 파멸이 기다리는 이 바벨론의 운명 속에 내 버려두고 달콤한 오늘을 살 수 있겠습니까? 데라는 단호하게 오늘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미래를 향하여 출발한 것입니다.

시작은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데라가 한 것은 이 시작 즉 출발점을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출발은 앞으로 자손들의 영원한 복락의 길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위대한 출발이었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하나님의 약속의 땅, 영원한 평화와 의의 땅, 자유의 기쁨이 있는 가나안 복지의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오늘은, 눈에 보이는 많은 성취가 아니고, 미래의 영원한 축복의 터전을 놓는 죽음, 땅 속에 묻히는 창조적인 씨앗 속에 있습니다. 위대한 오늘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온갖 거짓과 불의와 억압이 있는 바벨론으로부터 탈출하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오늘은, 주어진 오늘의 운명의 물길을 바꾸어 놓기 위해서 그 세대의 바보가 되면서라도 이 세대를 끌고 나가다 쓰러지는 그 출발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모하는 고인께서는 화려하게 보이는 어떤 정치적인 업적을 이루어 놓으신 것은 없습니다. 고속도로를 만드신 것도 아니며, 눈부신 경제발전 정책을 수립하여 성취하시지도 못했습니다. 올림픽을 유치하지도 못하셨고, 수백만 채의 아파트로 건설된 신도시를 만드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을 이룬 어떤 대통령보다 사실은 더 위대한 업적과 유산을 남기신 것입니다.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안일을 탐하지 않고 구국의 가시밭길을 택하는 용기,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정의의 편에서 서서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그 불굴의 의지, 위로부터의 소명을 따라 끝까지 십자가를 지는 그 인내심,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며 온갖 억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을 멈추지 아니하신 그 끈기 이런 눈에 보이지 않은 유산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 더욱 소중한 것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화려한 바벨론의 도시문명은 결국 다 소멸되어 버릴 것입니다. 오늘의 거대한 현대과학문명은 결국 마지막 날 스스로에게 재앙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현혹되지 않고, 데라처럼 모세처럼 그리고 해위 선생님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서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아 위대한 조상이 되기 위하여 약속의 땅을 향한 출발을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어떤 위대한 유산을 남기지 못하여도 좋습니다. 다만 오늘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고난을 감수하면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하란에서 죽은 데라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들이 남겨 준 유산이란 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저들이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나그네로 살다가 죽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야웨 하나님은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일컬어지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이제 야웨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요, 그의 제자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제 고인이 가신지 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남기신 정신적 유산들은 그 아름다운 빛을 더욱 밝게 우리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런 용기와 비타협의 정신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 때야말로 그분이 보여주신 삶의 모습이 더욱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존경할 만한 전직 대통령을 갖지 못한 우리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보람이 되어 주신 고인께 감사를 드리면서 이런 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부끄러움을 씻고,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위해  이제는 우리 모두가 출발을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유족들과 그분을 사랑하는 여러분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