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예경 권사 영결식 설교>

 

허물 벗은 새로운 피조물

고린도후서 5:17

 

곤충들은 대체로 허물을 몇 차례 벗으면서 성충이 됩니다. 곤충뿐 아니라 뱀도 허물을 벗으면서 크고, 바다의 게도 허물을 벗으면서 커갑니다. 따라서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곧 성숙한 단계로 나아감을 뜻합니다. 우리 인간도 어떤 의미에서 허물을 한 꺼풀씩 벗으면서 완성되어 간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윤예경 권사님께서 97년 동안 머물던 육체의 허물을 벗으시면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옛 것 즉 낡은 몸을 벗어버리고 새 것 즉 하느님이 주시는 새 몸을 입고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죽음의 시간을 그 사람의 마지막 시간으로 생각하고 슬퍼하며 애통해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삶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기에 오히려 기뻐하며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시간을 따라 점점 낡아지다가 죽음을 맞으면서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 인생관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의 삶이 점점 더 자라 완성되면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다고 믿기 때문에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항상 긍정적입니다.

우리가 권사님을 떠나 보냄을 슬퍼하는 것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나누던 사랑 때문이지만, 실상은 권사님은 마침내 나그네 생활을 끝내고 본향으로 가신 것이며, 무거운 육체의 멍에를 벗고 이제는 영광스러운 새 몸을 입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신 것이기에 슬픔 가운데서도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음을 종말로 보지 않고 오히려 생의 완성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므로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았던 죽음의 장벽을 허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장벽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낡은 것들이 폐기되고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허물을 벗는 일 또한 쉽지 않은 것입니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지만, 그 죽음 모두가 허물을 벗는 죽음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계속 자기 허물을 벗어 온 사람만이 비로소 최후의 허물을 벗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가 끊임없이 옛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로워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도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옛 허물을 벗음 없이 최후의 허물을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최후의 허물을 벗고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며 더럽지 않는 하늘의 새 몸을 입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허물을 벗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한 윤권사님도 97년의 삶을 사시면서 파란많은 삶의 굴곡을 거쳐오셨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남편과 이별해야 하였으며, 때로는 하느님께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방황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어려서부터 지녔던 신앙으로 하느님께로 돌아가면서 그분의 삶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권사님을 심방하면 그렇게 기뻐하시면서 신앙을 간증하셨습니다. 찬송을 혼자 부르다보면 그렇게 기쁨이 넘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권사님을 만난 지난 25년 동안 항상 어린 아이처럼 깨끗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맑은 정신으로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하시면서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약한 몸 때문에 교회에 많이 나오지 못하셨지만 언제나 깨알같은 주보를 매주일 한 자도 빠트리지 않고 다 보시면서 교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항상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권사님은 90이 넘어서도 결코 그의 외모를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해말간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저를 맞아 주셨습니다. 병상에 누워 계시면서도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하시기 위하여 늘 자신을 가꾸신 것이라고 봅니다. 쇠약한 몸으로 귀찮아서라도 아무렇게나 지내실 법 한데 권사님은 매일 매일 자신을 깨끗하게 단장하시면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셨던 것입니다. 권사님은 매일 매일 자신을 단장하면서 지난날의 허물을 하나 하나 벗겨 내고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나갈 것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권사님이 죽음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셨던 것은 바로 이런 준비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 끊임없이 허물을 벗어 온 사람은 그 죽음을 두려움으로 맞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던 삶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거기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윤권사님은 그런 집착을 벗어나 소망 가운데서 자유하셨기에 언제나 웃는 얼굴로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사랑과 믿음을 보여주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찍이 대전도자 무디는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신문에서 이스트 노스필드의 D. L.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를 볼 것입니다. 당신은 그 말을 한 마디도 믿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 때 나는 현재 이상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나는 보다 더 높이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이 낡은 흙집에서 불후(不朽)의 집으로, 죽음도 손댈 수 없고, 죄도 더럽게 할 수 없는 몸에로, 그의 영광의 몸과 같은 형상대로 옮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권사님도 죽으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 더 높은 곳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권사님은 이 땅에서의 나그네 복무 기간을 잘 마치셨기 때문에 이제 아름다운 본향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슬픔으로 그분을 전송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분으로 이 땅의 삶을 마치시고 영광스러운 하늘 나라로 올라 가셨기에 아름다운 찬송으로 그분을 작별하여야 하겠습니다.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로 맞이하는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죽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삶의 관문으로 믿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하느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였던 윤예경 권사님은 이런 큰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셨기에 권사님은 천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환하게 빛나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공포로 지배할 수 없는 생명의 승리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 속에 간직된 보배를 우리 모두가 확인하므로 우리의 사랑하는 이가 떠나간 슬픔을 벗어나 그분을 아름다운 찬송으로 전송하시기 바랍니다. 권사님이 우리에게 남긴 아름다운 자취들을 우리 속에 간직하면서 권사님을 작별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구름 타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재림하실 때 그가 베푸시는 잔치 자리에서 부활의 생명을 받은 우리 서로가 반갑게 만날 소망을 기약하면서 이제 권사님을 주님께로 고이 보내 드립시다.

하느님이 주시는 크신 위로와 소망과 평화가 고인이 사랑하던 모든 가족들과 교우들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